캐나다의 작가 페드릭 레인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이미 60살이 되어버린 어느 새벽 6시쯤, 그는 토론토 어딘가의 3
류 호텔 화장실 바닥에 기도하는 것 같은 자세로 누워있었다. 몇
번쯤의 구토를 하고 땀과 눈물을 엄청나게 흘려대며, 살아남기 위
해 발버둥친다. 머쓱한 속과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
해, 다시 말해 살아남기 위해 알코올 1리터와 코카인 2그램을 마
신다. 그 후, 그의 정신도, 영혼도 더 이상 그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치약의 마지막 부분을 짜내듯 그는 최후의 노력
으로 그는 지금까지 부러진 자신의 뼈를 세어본다. 술과 마약에
빠져, 자신의 몸을 소홀히 하는 동안 수 없이 부러진 뼈와 흉터
들. 그 상흔들을 고해하듯 돌아보는 것이다. 그 상흔 하나하나는
바로 그가 중독된 술과 마약에 의해 새겨진 일종의 침전물이었다.
부러진 뼈들의 숫자를 세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미 60살이 되어버린 어느 새벽 6시. 싸구려 호텔 바닥에 기도하
듯 누워서…….
정확한 문장을 옮긴 것은 아니지만, - 말하자면 그 글을 내 식으
로 다시 풀어쓴 것이다. - 내가 인식한 이야기와 대략 비슷하다.
이 글은 중독의 경험을 지닌 캐나다의 작가들과 함께 펴낸 ‘중독
(Addicted, 홍익출판사)’이라는 이름의 ‘고백’의 일부다. 고백
이라는 소개에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실제 중독의 과거가 있는 작
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이 책, 어떤 고백처럼 “술을 마시면 당연히 필름이 끊어지
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지인들
이 있다. 아직까지는 ‘촌스럽게’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으로
병원에 간 사람들은 없지만 - 확실하진 않다 - 전혀 낯선 풍경은
아니다. 내 주변에 없다고 하더라도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다. 마약이나 알코올 말고도 관계나 일. 섹스, 컴퓨터 게
임, 주식. 쇼핑 같은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흔하디흔하다.
중독이냐, 아니냐의 기준이란, 중독을 통해 사회적인 활동이나 관
계에 영향을 주느냐로 규정된다. 술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술 때문에. 사회생활에 영향이 있다든지. 관계에 단절이
온다면.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독은, 기호나 취향. 욕구가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독은 욕구의 진화이다. 욕구는 더 많은 Need와 Want가 발생하는
쪽으로 더 많은 여지를 할애하고. 반복되며 특정한 욕구는 진화하
고 어떠한 욕구는 퇴화한다. 궁극에는 특정한 욕구가 다른 욕구들
을 제거시키며 모든 욕구를 하나의 욕구로 대치된다. 그것이 중독
이다.
자연스러운 중독-일테면, 바이오해저드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3일
정도 밤새서 무조건 달라붙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과
는 달리 새로운 수단, 매체, 약물들의 등장으로 중독은 일종의 사
회적인 현상으로 등장한다. 일종의 사회적인 조절 중추 같은 것의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은 지랄 맞게 빨리 변하
고 사람들은 그보다 느리게 변한다. 그러니, 이런 불합리의 희생
자로 중독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 내 생각에는, 태초
에 누군가는 전 인류가 누려야 할 행복을 미리 정해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전 인류가 정해진 행복을 나눠쓰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
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아지고 보니. 사람들은 나눠진 행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중독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동시에,
중독자들 또한 의지가 박약한 어떤 떨거지들로 구분되는 것은 공
평하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운이 좀 나빴을 뿐이다. 전
인류가 나눠가진 행복의 조각을 조금 늦게, 조금 작게 받은 사람
들일 뿐이니까.
영화는 무언가 중독한,
혹은 중독 당한 슬픈 4명의 군상으로 채워진다.
그들 역시 너무 조금, 행복을 나눠가진 사람들이다. 누가 그들 몫
까지 가져갔을까?
알 수 없지만,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게, 우리 자신에게 유리하니까.
'Requiem for a Dream'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 원작 소설
을 접해보지는 못했다. - 앞으로도 접할 계획도 없다. 우울한 이
야기는 차라리 영화로 봐야 한다. 문자를 상상하고 있으면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인생이 더 우울해진다. - 하지만, 이 4명의 중독자
가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여전히 의미심장해진다. 정말 빠
른 속도로 종말을 향해 질주해가는 모습 같다.
질주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마 이 영화가 지니
는 근본적인 속도 때문이리라. 21세기적인 몽타주의 전개나 화면
분할과 인식의 속도를 넘어서는 편집의 빠르기는 이 영화가 지니
는 근본적인 속도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경우는 코드가 공감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쪽
에 가까운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그랬다.
사라는 그림 속에 있다. 아마도, 그녀는 그 그림 속에 있기를 선
택한 것 같다. 잘 정리된 리모컨과 군것질거리들이 놓여진 작은
협탁이 푹신한 안락의자 옆에 놓여있다. 사라는 그가 가장 좋아하
는 TV 프로그램을 잘 정리된 리모컨과 군것질거리를 먹어가며 보
고 있다. 그게 그녀의 세계 전부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자극
이나 행복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그녀는 모든 친밀감과 꿈, 희
망까지 TV를 통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에게, TV는 세상을 향
해 뚫어놓은 창이며, 동지이며, 가족이었던 셈이다. TV만으로, 협
탁만으로, 리모컨만으로, 군것질거리만으로 사라의 세계는 완성되
지 않는다. 그 안락의자에 앉아 이 모든 것을 같이하며 TV를 보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세계가 되고, 그녀가 속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해리는 구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물이다.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생활은 불행
할 수밖에는 없다.
해리는 마약보다 마리온이 훨씬 가치 있는 것이란 사실을 구별하
지 못했고 중독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멈추지 못했
다. 결론적으로,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
지 구별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수없
이 많지만.
마리온. 그녀는 블랙홀 같은 위장을 지닌 여자였다.
하루키의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위확장증에 걸린 여자처럼, 그녀
는 먹고 또 먹고 먹어도, 혹은 먹지 않아도 그녀가 충분한지, 부
족한지를 알지 못했다. 마리온은 해리와의 사랑과 부족함 없는 돈
으로 충분히 행복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위는 행복에
관한한 그만 이라는 Stop Signal을 보내주지 않는다. 맹렬히, 그
녀의 부족한 행복은 약물로 채워지고 그녀는 그렇게 된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그녀는 예뻤다. 그래서 난 슬펐다. 설명하
기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보면 슬퍼지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마리온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타이론.
타이론은 지탱해주는 존재였다. 말하자면 질주하듯 달려가는 다른
3명의 파멸에 일종의 관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 중 가장 중
독의 세계에 근접해있었지만, 반대로 이들 중 깊이 빠지진 않는
다. 어떤 의미에서, 해리와 마리온에게 세상과 같은 존재였다. 좋
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결국 그들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쫓겨난다.
제비뽑기에 걸려 고아원 원장에게 “죽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
며 죽 그릇을 내밀었던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그들의 선택이 아니
라, 그들이 부족한 행복과 희박한 행운 때문에 일종의 제비뽑기에
걸린다. 그리고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던 고아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지된 행동을 취한다. 중독이라는 행위, 그 중독의 본질은 죽 그
릇을 들고 누군가에게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라고 애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은 세상.
혹은 사회라고 불리는 거대한 고아원에서 쫓겨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법률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
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미 불행한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무슨 의
미를 지닐 수 있을까.
올리버 트위스트는 해피 엔딩이지만, 중독이나 인생도 그런 것은
아니다. 대개, 인생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누군가가 죽어야 끝나는 이야기라 더욱 그렇다.
죽음이 해피 엔딩인 인생은 참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마약 중독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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